임을 위한 행진곡 


임을 위한 행진곡

0 2,454 2016.08.06 13:01

 

임을 위한 행진곡 현행 고수

 

임을 위한 행진곡이 현행대로 합창을 유지하기로 한 국가보훈처의 결정이지만 정부의 뜻이기도 하겠죠

 

5·18 기념일은 지난 1997년 정부 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까지 모든 참석자들이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방식이 유지됐습니다.

 

하지만 2009년부터 합창단이 부르고 원하는 참석자들이 따라 부르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는데요.

 

국가보훈처는 ‘36주년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식순에 포함해 합창단이 합창하고 원하는 사람은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현행 고수 입장을 밝혔다고 합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현행 고수는 국론 분열을 이유라고 하는데요. 이건 하나의 핑계에 불과하겠죠

.

 

국회에서 다수를 차지한 야당이 한 목소리로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을 요구해 박근혜 대통령이 "좋은 방법을 찾도록 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해 변화가 예상됐지만 결국 현행대로 지정된 것이라고 합니다.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하거나 제창 형식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기존 형식을 고수한 것인데요. 야당이 강한 반발이 전망되고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으로 생긴 모처럼 만의 정치권의 협치 분위기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16일 SNS를 통해 "오늘 아침 7:00 48분 청와대 현기환 정무수석으로부터 어젯밤 늦게까지 보훈처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에 대한 논의 결과 국론 분열의 문제가 있어 현행대로 합창으로 결정, 청와대에 보고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박 원내대표는 "대통령께서 지난 13일 청와대 회동과 소통 협치의 합의를 잉크도 마르기 전에 찢어버리는 일이라며 강한 항의를 했다"고 밝혔는데요.

 

이에 대해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정부 나름대로 원칙의 문제가 있는 것이고 대통령이나 총리가 기념식에 참석했을 때 따라 불러야 하는 문제도 생기는 것 아니겠느냐”며 “따라 부르고 싶은 사람은 따라 부르고 싫은 사람은 안 불러도 되는 절충안”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정 원내대표는 “최선의 방도를 찾아봤는데 이 방도 외에는 없다는 것이 보훈처의 설명”이라고 덧붙였다고 합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97년부터 2008년까지 공식 기념식에서 참석자 전원이 함께 부르는 제창 방식이었으나 이명박 정부 당시 제목과 가사 등이 사회주의 혁명을 뜻한다는 논란이 일면서 2009년부터 공연단 합창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에 5.18 유공자 및 유가족들과 야권은 강하게 반발해왔는데요. 합창과 제창은 공식 행사에서 위상 차이가 커 유가족들이 5.18 기념식을 따로 열기도 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한민국의 민중가요로서, 5·18 민주화운동 중 희생된 윤상원과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하여 1981년 작곡되었습니다. 가사의 원작자는 백기완, 작곡자는 김종률이며 처음에는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표준어 규정에 따라 통상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고 부릅니다.

 

1981년 소설가 황석영과 당시 전남대학교 학생이었던 음악인 김종률 등 광주 지역 노래패 15명이 공동으로 만든 노래극(뮤지컬) 《넋풀이 -빛의 결혼식》에 삽입되었습니다.

 

이 노래극은 1980년 5월 27일 5·18 민주화운동 중 전라남도청을 점거합니다가 계엄군에게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1979년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합니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것인데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 노래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합창으로 쓰이기 위하여 지어졌다고 합니다.

 

곡은 김종률이 1981년 5월 광주에 있는 황석영의 자택에서 썼고, 가사는 시민사회 운동가 백기완이 YM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수감 중이던 1980년 12월에 서대문구치소 옥중에서 지은 장편시 〈묏비나리 -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의 일부를 차용해 황석영이 붙였습니다.

 

감시를 피해 황석영 자택에서 이동식 카세트 녹음기를 이용해 조악하게 녹음되었던 위 노래극은 1982년 2월 윤상원과 박기순의 유해를 광주 망월동 공동묘지(현 국립 5·18 민주 묘지)에 합장하면서 영혼결혼식을 거행할 때 처음 공개됐는데, 이 노래는 이후 카세트테이프 복사본, 악보 필사본 및 구전을 통해 민주화 및 노동운동 세력 사이에 이른바 '민중가요'로써 빠르게 유포되었고,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대표곡으로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가사의 원작자인 백기완은 1998년 "나는 이 노래에 대한 소유권도 저작권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미 이 땅에서 새 날을 기원하는 모든 민중의 소유가 됐기 때문입니다."라며 저작권 불행사 입장을 밝혔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매년 5·18 민주화운동 추모행사에서 유족과 시민들 사이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사실상 대표하는 노래로 제창되어 오다가, 1997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승격되어 정부 주관으로 첫 기념식을 열었을 때부터 2008년까지 정부주관 기념식 본행사 말미에 기념곡으로서 제창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시기였던 2009년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공식 식순에서 제외되고 식전 행사로 밀렸으며, 2011년부터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폐지되고 합창단의 기념공연시 합창에 삽입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2013년 국가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할 별도의 5·18 민주화운동 공식 기념곡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요. 5·18 관련 단체는 2010년부터 정부주관 기념식 참석을 거부하고 별도의 기념식을 여는 등 이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한민국의 민권운동가들에 의해 해외 각국에도 소개되고 있는 한편, 대한민국에 파견되었다가 귀국한 이주노동자들을 통해서도 해외에 유포되어 각국의 노동운동 현장에서 현지어로 번안되어 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현지어로 번안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는 것으로 알려진 나라는 홍콩,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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